스테이블코인, 한미 중앙은행의 시선차…혁신과 금융안정 사이
스테이블코인, 결제수단인가 금융위협인가
2025년 6월 2일 열린 '2025 국제컨퍼런스'에서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정책 대담을 통해 서로 다른 관점을 분명히 드러냈다. 이 총재는 원화 표시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이 금융 안정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신중론을 폈고, 월러 이사는 결제 시장에서의 경쟁을 촉진하는 긍정적 수단으로 평가했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법정화폐와 연동돼 가치를 유지하는 암호자산으로, 디지털 결제 시장에서 점차 주목받고 있다. 월러 이사는 "스테이블코인은 비은행 기관이 제공하는 결제 수단으로, 미국처럼 결제 수수료가 높은 나라에서는 민간 주도의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반면 이 총재는 "한국은 자본 통제가 가능한 국가로,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자본규제 회피 가능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국의 이 같은 시각 차이는 스테이블코인을 바라보는 철학에서 비롯된다. 미국은 결제 수단 간의 공정한 경쟁을 중시하며 민간 주도의 결제 인프라 확장을 장려하는 반면, 한국은 금융안정과 자본 유출 방지를 우선시하는 구조다. 이는 각국의 금융시장 환경과 정책 철학의 차이를 반영하며, 향후 양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자본통제와 규제, 한국의 우려는 실재한다
이창용 총재는 스테이블코인의 혁신성은 인정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리스크를 경고했다. 특히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국제적으로 쉽게 교환될 경우, 자본 유출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그는 "달러 표시 스테이블코인과의 교환이 쉬워지면, 자본규제를 회피하며 해외로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는 경로가 열리게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은 IMF 외환위기 이후 자본 이동에 민감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외환보유액과 환율 안정을 위해 자본 흐름을 면밀히 관리해왔다. 이 총재의 입장은 이러한 국내 금융 구조에 기반한 현실적인 고민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자체를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지만, 비은행권에서 자율적으로 발행할 경우 시스템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편, 월러 이사는 민간 결제 업체에 대한 규제를 은행 수준이 아닌, 결제 사업자 수준으로 차등 적용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미국 내 결제 인프라의 다변화와 민간 기술 혁신을 지원하는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결국 한국이 스테이블코인을 수용하는 방식은 단순한 기술 수용이 아닌,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된 셈이다.
규제와 혁신 사이에서의 정책 딜레마
이날 정책 대담은 단순한 의견 교류를 넘어, 각국이 기술 혁신과 금융 안정 사이에서 어떤 정책적 균형점을 찾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특히 인공지능(AI)과 스테이블코인처럼 기술 기반 혁신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중앙은행들의 역할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이창용 총재는 이미 지난 5월에도 "스테이블코인을 한국은행이 직접 발행하거나 관리하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민간 주도의 무분별한 발행을 막고, 정책적 관리가 가능한 틀 안에서 혁신을 수용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반면, 월러 이사는 연준 내부에서도 기밀이 아닌 표준화된 자료를 기반으로 AI와 같은 기술 활용을 실험하고 있으며, 스테이블코인 역시 그 연장선에서 보려는 시각을 보였다.
앞으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 및 허용 여부는 각국의 경제 구조, 통화 정책, 기술 인프라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담처럼 양국 중앙은행 수장이 서로의 입장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과정은 향후 국제 공조와 규제 방향 설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정리하면, 한국과 미국은 각각의 환경 속에서 스테이블코인이라는 기술적 혁신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암호자산 이슈를 넘어선, 경제 정책과 통화 주권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만큼 앞으로의 논의는 더욱 정교하고 구체적인 규제 프레임워크 마련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